
처음 흙을 만질 때의 차가움은 오래가지 않는다. 손바닥의 온도가 스며들면서, 점점 부드러워지고 내 손 모양을 기억하듯 따라온다. 도예를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. 무정형의 덩어리가 조금씩 형태를 얻고, 그 안에 내가 의도한 선과 숨결이 들어간다.
며칠 전, 작업실에서 작은 찻잔을 빚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 우리는 왜 여전히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까? 기계가 훨씬 정확하고 빠른데도 말이다. 아마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이, 결과물에만 남지 않고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기 때문일 거다. 그 잔을 쓰는 누군가가, 내가 느꼈던 흙의 온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.
유약을 고르고, 불의 온도를 조절하는 과정은 또 다른 도전이다. 흙이 불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 완전히 예측할 수 없기에, 매번 새로운 결과를 받아든다. 어떤 건 예상보다 훨씬 깊은 색을 띠고, 어떤 건 의도치 않은 무늬가 나타난다. 실패처럼 보이는 결과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시도를 위한 아이디어가 된다.
이런 이유로 나는 도예를 단순한 공예가 아니라, 끊임없는 실험이자 대화라고 생각한다. 흙과 나, 그리고 그 작품을 만날 누군가 사이의 대화 말이다. 머드리본에서 만드는 모든 작업은 그 대화의 기록이자, 흙이 예술로 피어나는 순간을 담은 흔적이다.
다음 번 가마 문을 열었을 때, 어떤 색과 질감이 날 기다릴지 나는 아직 모른다.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내가 매번 흙 앞에 앉는 이유다. 그것은 늘 새롭게 피어나는, 아주 사적인 기적이니까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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